신경 쓰지 않는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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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쓰지 않는 연습>~고독과 고립은 다르다. 신경 안 쓰는 것과 무관심은 다르다.
깊이 있는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라 심오한 책을 읽지 못 하겠다.
하나의 학문에 온전히 집중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범인인 관계로 cool time을 부여해야 한다.
그렇다고 tv나 게임으로 휴식을 취하기에는 그들의 중독성이 너무 강하다.
공부 간 휴식이라는 명목아래 추천하는 것은 담배를 피우거나,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거나, 잠을 자는 것 그리고 애니를 보는 것이다.
담배를 피우는 것은 자신의 목숨과 그 주변 생명들의 목숨 그리고 일부 집중력을 태우는 행위이나
조그만하지만 의욕도 조금 불 태울 수 있다.
잠도 10분간 잠깐 자는 것은 괜찮다.
만, 시간이 길어진다면 오히려 피곤 해 지는 효과도 있다.
이 중에서 건강을 해치지 않고 본연의 집중력을 높이는데는 역시 산책과 책 그리고
애니밖에 없다.
요근래는 산책도 미세먼지 때문에 걱정이지만
다행히 거주하는 곳은 미세먼지 걱정이 적은 곳이다.(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 걸을 수 있을 때 많이 걷자.)
책도 가벼운 내용이라면 뇌를 쉬게하는데 용이하다. 마치 애니처럼.
애니와 tv의 차이는 비현실성이다.
tv에서 사람이 어떤 행동을 취하면 '나'와 비교하기 시작하게 되는데
여기서부터 번뇌가 찾아온다.(저 사람은 저런데 나는 왜 이렇지? 뭐하고 있지? 한번 해 볼까?)
반면, 애니는 애초에 비교 대상이 아니다.
일부 사람들은 코스프레를 하는 오덕후를 문제 삼으나 이는 번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것이다.
자신의 열정을 머리가 아닌 실천을 하는 순간 그것은 번뇌가 아니라 현재 나 자신이다.
결국 모든 것은 자극적인 것만 아니면 다 괜찮은 것이다.
혼자 있으면 잡생각이 난다.(일명 이불킥)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부시간은 잡생각과 비례한다.
고독과 고립은 다르다.
신경을 쓰지 않는 것과 무관심은 다르다.
불교에는 해탈이라는 경지가 있다.
모든 것은 관계에 비롯한 것이고 이에 끊임 없이 변하는 공의 관계다.(제행무상, 제법무아)
이를 깨달은 사람이 부처이고 부처는 모든 이의 가슴속에 있다.(나도 부처가 될 수 있다.)
꾸준한 수련이든 한순간의 깨달음이든
이를 알고 평온 해 진다면 세상의 번뇌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다.(열반적정)
이러한 사실은 태어 날 때부터 내재 된 것으로 서양에서도 대표적으로 소크라테스가 눈치를 깠었다.(동굴속의 그림자, 너 자신을 알라)
<신경 쓰지 않는 연습>은 어느 사찰의 스님이 작성한 것으로 불교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작성 된,
제목 그대로 고독을 즐길 줄 아는 상태에 대해 서술하였다.
생활하면서 상담을 하면서 살아오면서 겪은
번뇌와 깨달음을 서술 해 놓았다.
이미 필자 또한 알고 있었던 내용이기에 큰 가르침은 받지 못했지만
아직 '세상 모든 일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허무주의가 아니다. 세상과 연을 끊고 인위적으로 평온을 가지라는 것이 아니다.
세상과 연을 인위적으로 끊는다는 것은 부처에게로 가기 쉽게 만들지만 결국 그 끝과 부처 간에는 깊은 낭떠러지가 있다.
낭떠러지 속에서의 조그만한 바람에도 쉽게 온몸을 덜덜 떠는 자신을 보게 되는 것이 고립이다.
차라리 계율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부처에 더 가까운 행동이다.
목적성을 알고 계율에 따라 행동한다면 부처가 되기 쉽다.
아니라면... 영원히 착각 속에 사는 것이다.
어떤 행위를 하고 나서 번뇌가 없다면, 평온한 상태라면 부처의 길이다.
'불교는 착하게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평온 해 지는 것이 목적이다.'
이 간단한 사실만 알아도 '모든 트러블은 관계로부터 나온다'는 알프레드 아들러의 말에 반박 할 수 있다.
나루토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윤회와 육도에 대해 설명하니 참고하길 바란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 해 보면 사먼킹에 더 가까운 책이라 할 수 있다.
난토카 나루
어떻게든 되겠지.
#태양광 상담은(010-2668-3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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