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상에 독재는 발생하지 않아요’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은 나치주의에 대하여 항상 반성하고 이를 학교에서 가르친다.
영화상 학생들도 선생님들도 독재주의(파쇼, 포퓰리즘)를 많이 다루어 통달 할 정도이고,
이제는 지겹기도 하다.
학점을 얻기 쉬워 선택하고 그런 학생들을 알기에 선생님들도 가르치기 꺼려한다.
라이너는 야간학교 나와 별다른 전공 없이 이것저것 가르친다.
하고 싶은 과목은 무정부주의(아나키즘)지만 아직 인정을 받지 못해 독재주의를 가르치게 된다. 그러던 중 한 학생이
지금 세상에 독재는 발생하지 않는다. 말한다.
이 말이 라이너를 뱅어 선생님으로 만들었다.
학생들에게 독재주의의 위험을 알리려 그들에게 그것을 경험하게 한다는 내용의 영상은 많다. 하지만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과 같이 알고서도 당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 원인이 자만심과 민주주의(개인주의) 그리고 불만 이였다.
개인주의와 독재주의는 얼핏 상반된 개념처럼 보일 수도 있다.
독일의 나치주의, 즉 독재주의는 불만에서 시작한다.
전쟁 직후 갚아야 할 배상금, 패배감, 어려워진 경제로 인한 배고픔.
이 모든 것이 불만이다.
개인이 이 불만을 해소하는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그들은 조직을 만들고 조직과 함께 하는 동안 자신을 잊고 조직의 목적을 맹목적으로 따르는데 이 조직의 권력이 한 곳에 모이면 이것이 바로 독재주의이다.
공산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북한은 독재정치를 하고 있는데 민주주의를 특히 원인으로 삼고 있는 것은 독재주의에 있어 원동력은 조직원들의 지지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원초적인 동물이였다면 때리거나 배불려 주거나 따뜻하게 해 주는 것만으로 다룰 수 있다. 아쉽게도 인간은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억압 하려 하면 할수록 반항한다.
따라서 자발적으로 따르게 만들 수 밖에 없는데 자신의 능력을 과신 할수록, 개인의 생각이 많을수록 다루기 쉽다. 생각이 아무리 많아도 욕구가 무한하듯 불만은 생기고 이 불만을 해결 해 줄 조직이나 메시아가 있다면 그들은 하나의 물결(디벨레)이 된다.
공산주의는 경제적 개념으로써, 모든 생산방식을 국가가 관리하고 거기서 나온 산물을 국가가 배분한다. 국가는 기본적 성질상 생산방식 이외에 법, 군대, 정치 등도 관리하는데 이 과정에서 이미 독재정치에 가깝다 할 수 있다. 즉, 애초에 공산주의에 찬성한 사람들은 하나의 조직에서 평등한 배분을 바랬기 때문에 공산주의는 원인이라 할 수 없다.
공산주의가 이루어지기 전 어떤 이데올로기 였던지 그들이 스스로 원해(민주주의) 공산주의를 선택했다 생각한다. 물론 상황적 환경적인 외부적인 요소들이 있었겠으나 이는 데모, 건의, 주장 등으로 바꿀 수 있다 생각된다. 그렇기에 소련은 무너졌고, 중국은 시장 경제를 받아들였다. <1984>에 나왔듯 조작된 역사, 언론, 교육 등 외부와의 단절로 체제 유지가 되었다 생각 할 수 있지만 북한이 그 정도로 꽉 막힌 동네는 아니라고 생각되기에 체제 유지가 된다는 것은 그들(조직원)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완전한 독재는 한 사람이나 당에 의한 것이 아니라 조직전체에 의한 것이다.
이제까지는 독재주의를 쉽게 이해하기 위하여 독재주의란 한 사람 또는 일부 당에 의한 통치체제라고 생각했다. <디벨레>를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뱅어 선생님의 control을 벗어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독재주의가 성숙 해 질수록 조직원들이 방관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참여 하여 조직을 이끌고 만들어 갔다. 이것이 독재정권의 매력이다. 본인이 조직의 일부로서가 아닌 조직으로서 충족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300>에 보면 하나의 창으로써 조직을 움직여야 제대로 힘을 발휘한다는 내용이 있다. 독재정권이 강력한 이유는 자발적인 참여로 인한 결집력 그리고 잔혹성이다.
창은 날카롭고 단단할수록 좋다.
단, 창 외부에 있는 것들은 창의 쓰임에 따라 운명이 좌우 되는데, 대부분 창은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존재한다.
한편으로는 김정은이 핵을 개발하는 이유가 창의 결집력이 많이 약해졌다는 것을 의미 할지도 모른다.
독재자의 control을 벗어난 창은 자신의 존재이유를 위해,
조직의 존재이유를 위해 처음에 만들어졌던 목적을 충실히 이행하는데 이에 대한 모습을 영화에서 볼 수 있다.
평소에 학생들이 가지고 있던 불만을 조직의 목적에 투영하면서 그들은 점 점 세력을 넓혀갔다.
한 사람의 인간은 나약하지만 조직으로서의 인간은 강하다. 강해진 인간은 폭주한다.
팀이라는 학생이 있다. 이전에는 쭈글이로 살았지만 조직에 편승되면서부터 태도가 달라진다. 처음에는 활발 해 지고 조직에서 위치를 잡아가며 결국에는 조직을 이끌어 간다.
디벨레에서 제일 열심히 활동한 조직원이였다.
한국은 독재정권이 만들어지기에 최적화 된 곳이기도 하지만 이를 반면교사 삼아 극복 할 여지도 있다.
학생들에 대한 원할한 통제라는 명분아래 똑같은 옷, 똑같은 머리를 강요하고
학생 신분을 벗어나 직장인이 되면 똑같은 스펙(토익, 봉사, 학점 등 등)을 강요당하고
직장인 또는 어른이 되었을 때는 사회적 관계에 갇혀 끝임 없이 조직에 편승 되어야 한다.
자연인으로서 모두가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렇게 외치지만 조직에 소속 되지 않은 사람을 일명 백수, 한량 등이라 부르며 그들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독재정치는 모든 조직원의 생각이 일치하고 함께 활동하면 할수록 성숙 해 진다.
특히 이는 똑똑하고 자만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독재정권에 빠지기 쉬운데 그 예가 바로 디벨레에 나오는 학생들의 자유토론 방식이다.
영화에서 학생들은 선생님과 맞먹으며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데, 부러웠다.
저렇게 당당하게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모습을 보고 역시 선진국은 수업부터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교에서도 저런 비슷한 수업 방식을 채택 했었지만 필자부터 비협조적이였다. 대충 하다가 말겠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 생각 해 보면 모지리였다.
이렇듯 한국은 독재정권이 들어서기에 최적화 된 곳이지만 빠져 나올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바로 아무 생각없이 조직의 흐름에 몸을 맡긴다는 것.
뛰어난 방어기재로 무의식적으로 나온 행동일 수도 있고 아니면 우연에 의한 것일지도 모르나 그들은 한번도 조직에 반항적인 적이 별로 없다.
이는 그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과 환경 그리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조직의 독재로부터 빠져 나올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진보 보수든 구시대적인 편가르기의 산물이다.
이 여지를 박살내는 것이 현재 진보와 보수다.
진보와 보수는 일정한 프레임을 만들면서 대립하고 있는데 이 같은 행동이 교육과 환경에 영향을 준다. 그렇지 않아도 좁은 나라를 지역으로 나누고 문화로 나누는 등 별다른 정책적 특성도 없으면서 진보와 보수를 표방하며 나라를 분열하고 있다.
학생들은 이를 배워 자신의 과오를 SNS 등 인터넷에 자랑한다.
인터넷의 장점 중 하나가 두레를 만들기 쉽다는 것이다.
특히 SNS는 작은 조직을 더욱 만들기 쉽게 하는데 그 곳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는 갈수록 저급 해 진다. 어른들이 편가르기에 열심히니 학생들도 조직의 힘을 자연스럽게 배우고 그들만의 독재정권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를 자랑한다. 디벨레의 상징처럼
외부의 적뿐만 아니라 내부의 적에게도 잔인하다.
같은 조직원이라 할지라도 행동을 같이 하지 않으면 외부의 적으로 간주한다. 이것이 독재정권의 배타성이다.
‘계급사회는 가난하고 무지 할수록 분명 해 진다.’ <1984>
한국에서는 나이, 직위, 직급, 직책 등에 따라 비공식적으로 서열을 정하고 계급이 낮을수록 궂은 일을 한다. 이는 대부분 나이에 따라 정해진다. 나이가 젊으니 배려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예의’라 부를 수 있지만, 마치 이것이 정해진 rule인 마냥 개인에게 강요를 한다면 독재체제와 다를 것이 없다.
독재체제의 특징은 개인의 목표, 의지보다는 조직의 목표가 우선시 되는데 민주주의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악습, 폐습들이 이와 유사하다.
선의를 당연하듯이 받아들여 개인의 자발적 선의를 왜곡하고 악습과 폐습을 따르지 않으면 irregular로 취급하여 직간접적으로 불이익을 주니, 개인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것을 넘어 강요, 압력까지 이어져 독재체제와 다를 바가 없다.
이에 한국의 계급사회, 허례, 부당하게 강요하는 예의를 독재체제라 칭하고자 한다.
가난하고 무지한 불만이 가득한 사회 일수록 독재체제는 분명 해 진다.
한국은 착각에 빠져있다. 박정희처럼 개인이 막강한 파워로 국가를 좌지우지 하는 것을 독재체제라고 생각한다. 아니다. 조직이 분명한 법 없이 부당하게 개인의 생각과 행동에 제약을 가하고 특정한 방향으로 가게끔 강요한다면, 그들이 아무리 민주주의를 외치고 사랑한다 하더라도 분명 독재체제이다.
한 사람의 독재자나 소수당뿐만 아니라 이에 적극 참여하는 사람도, 이를 방관하는 사람도 결국 독재정권의 요소이다.
한국이 앞으로 극복해야 할 것은 ‘우리’라는 우리 안에서 서로 물고 뜯고 싸우며 동물처럼 계급을 형성하는 것이다. 개인보다는 조직이 조금 더 효율적인 것은 인정하나 앞으로 필요한 것은 혁신이다. 효율적인 것으로 따지자면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 & 로봇을 사용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동물이 아닌 인간이라면 ‘우리’ 안에 있는 동료를 다 같은 자연인으로 보고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 간에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성숙한 우리를 형성해야 한다.
이것이 세계를 이끌어 갈 재목을 만드는 첫 번째 과제이다.
영화 <디벨레>는 필자에게 독재정권에 대한 재정의와 그와 관련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물결과 관련 된 수많은 장면들을 보여 주어 예술적인 면에서 뛰어나고 우리나라 사람들도 한번쯤 우리 일상에 섞여 있는 독재체제를 잘 찾아보기 바란다.
독재자만 없어지면 독재체제는 자연스럽게 없어진다 생각하지만 조직원이 독재체제를 원하는 한, 당연함에 의문을 갖지 않는 순간 독재정권은 계속 유지된다.
별 다 中 별 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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