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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

하퍼 리  공진호  
출판사 열린책들   발간일 2015.07.15
책소개 하퍼 리의 첫 작품이자 『앵무새 죽이기』의 후속작 『파수꾼』 55년이 지나 발견되어 2015년 7월...




'인간에게는 각자의 파수꾼이 있으며, 그 양심에 따라 행동 할 권리가 있다.'


성인이 된 진루이즈(약칭 스카웃)

죽어 버린 스카웃의 오빠 젬

한 때는 흑인을 위해 변호까지 했지만 지금은 흑인의 권리 상승에 반대하는 주민협의회에 참여하는 스카웃의 아버지 에티커스

이와 뜻을 같이 하는 스카웃의 애인 헨리 캐네디(행콕) 

박식한 것 처럼 말을 어렵게 하지만 막상 자신의 뜻대로 안 되면 싸다구 날리는 스카웃의 삼촌, 잭


<앵무새 죽이기>를 짓기전 만든 처녀작으로, 정작 책으로는 늦게 발행함으로서 <앵무새 죽이기>의 후속작으로도 알려져 있다.

내용상으로도 스카웃이 성장한 이후 이야기를 담은 것으로 

과거를 회상하는 과정에서 <앵무새 죽이기>에서는 설명하지 않은 뒷이야기를 서술 해 놓았다.


but <파수꾼>과 <앵무새 죽이기>는 별개의 책이다.(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캐릭터, 인물 구성 등 동일하다고 하퍼 리가 표망하지만 막상 읽고 나면 별개의 책으로 느껴진다.

흑인에 대한 본심을 들어난 에티커스의 잘못이 아니다.

너무 성숙 해 버린, 순수한 말괄량이 스카웃이 

'누구세요?'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너무 성숙하고 이기적이고 약해진 스카웃이

다른 책으로 느껴지게 하는 요인으로 크게 작용한다.


어린 스카웃은 불의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속마음까지 바꾸지는 않았다.

다소 젬에게 의존 했을지는 모르겠으나 표리부동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성인 스카웃은 뺨 한대에 그때까지 역정적으로 주장한 자신의 의견을, 본래 흑인의 인권에 관심이 없었다며 접어버리는 이상한 면을 보여준다.


모든 이는 폭력을 두려워 한다.

폭력 그 자체보다는 폭력이 이루어지는 당시 상황 또는 이후를 두려워한다.

폭력에 무릎을 꿇는 것은 신념이 적은 자의 일반적 속성이다.

이는 고대부터 전쟁을 통해 변화 된 이념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으며, 가까이는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을 통해 알 수 있다.

한 때 교단에서 사랑의 매라 하며 쉬이 가르치고자 사용한 방법이지만

전제는 가르치는 선생의 인성이 완성 되어 있어야 한다.

그 결과로 지금은 합법적인 폭력이 교단에서 사라지고 있다.


필자는 폭력을 부정한다.

특히 어릴 때의 폭력을 부정한다.

폭력을 통한 배움은, 

학대에 의한 배움은 깨달음이 아니라 강요이다.

만약 정말로 폭력을 당하는 사람을 위한다면 그 사람의 자존감과 신념, 자유의지를 존중한다면 폭력은 장난이라도 행해져서는 안된다.

옛날이야 가르치지 않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임을 당할 염려가 있어 때려서라도 가르쳐야(살려야) 했지만 오늘날 선진화 되고 있어 더이상 때려서 가르 칠 필요가 없다.

개인이 사회에서 부적합한 행동을 하면 간접적이고 slowly 제대를 가하니 폭력에 의한 교육은 지양 해야 한다.

잭(삼촌)이 폭력을 행한 것은 마땅히 비판을 당해야 하는 일이다.

잭이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던, 지식인이던 

시대를 뛰어 넘은 절대적인 정의가 아닌 이상 타인이 개인에게 폭력을 행사할 정당한 권리 특히 이유는 없다.

스카웃이 이를 폭력이라 생각하지 않고 훈육이라 받아들였는지 아니면 순간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나 민망함으로 순순히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느쪽이든지 적절한 (마음)대응 방식이 아니다.

필자가 알고 있던 스카웃이라면.


하퍼 리는 현실의 사건과 자신의 이야기를 책에 적용시켰다.

감히 짐작 해 보건데 <파수꾼>의 결말을 싸다구로 급히 끝낸 이유로 계속 쓰고 싶었지만 싸다구에 준하는 외압에 의해 글을 중단 하게 된

슬픔과 짜증을 이야기에 투영 한 것이라 생각된다.

하퍼리의 허락을 받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얼떨결에 허락했을 것이라 생각하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작품에 프라이드가 없는 작가라 평할 수 밖에 없어

<앵죽>를 높게 평가하는 필자로서는 차라리 잭을 삼촌으로 둘지언정 믿고 싶지 않다.


<파수꾼>은 3인칭 절대자 시점이다. 이는 핀치's story를 이질적인 요소로 다가오게 했다.

<앵죽>은 스카웃의 시점으로 표현 함으로서 스카웃의 생각 행동에 거리낌 없이 접근 할 수 있었지만,

<파수꾼>은 스카웃을 '그녀'라 표해 주인공의 마음에 접근 하는 것을 방해 했다.

그녀를 지칭한 것이 스카웃인지 아니면 스카웃이 대상으로 삼는 어떤 대상인지, 

매끄러운 글 읽기에 유용하지 않았다.

<앵죽>에서 번역자 후기를 참고하면 번역자가 임의로 시점을 스카웃으로 맞췄다고 나와 있는데 정말 좋은 선택이였다고 말하고 싶다.

번역가에 따라 책의 성격이 바뀌는 것을 보니 하퍼 리에 대한 환상이 너무 컷던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다행히 하퍼 리를 '신적 존재'로 보지 않았기에 하퍼 리를 비난하거나 배제 할 생각은 없다.


다음과 같은 변화는 <앵죽>의 팬으로서 번역가를 바꿔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 알렉산드리아를 에티커스의 누나라 표현 한 점

일반적으로 동생이 오빠의 집안 일에 관여 한 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하여 번역가가 임의로 알렉산드리아를 에티커스의 누나로 등장시켰다 하지만

알렉산드리아에 대한 에티커스의 대응을 생각한다면 누나라는 위치는 부적절하다.

자립심이 있고 지적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동생보다는 오히려 손윗사람이 부담스러운 존재로 다가온다.

에티커스가 신사적이라고 하는데 자신의 누나를 가정부 또는 요양간호사로 부려먹는다고는 쉬이 생각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에티커스가 나이가 먹어 거동하기 힘든 상황을 고려 할 때 알렌산드리아가 누나라고 한다면 과연 신사인 에티커스가 나이가 든 누나를 부려 먹을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또한 스카웃의 알렉산드리아에 대한 태도도 문제가 있다.

알렉산드리아가 손윗사람이라 에티커스 성격 상 최대한 존중을 해 주었을텐데

스카웃에게 신적 존재인 에티커스가 존중을 표시하는데 그의 신도인 스카웃이 알렉산드리아를 막대한다는 것은 eva인 것 같다.

일반인들도 자신의 부모의 행동에 따라 타인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데 자신의 아버지를 자기 대신 도와주고 자신을 위해 맛있는 요리를 해 주는 고마운 분에게


'고모는 당장 입 닥치고, 모자에다 오줌을 눠 그것을 머리에 써야 되요.'

라고 할 수있는가?


물론 이런 금수만도 못한 짓은 알렉산드리아가 에티커스한테 손 아랫사람이라도 해서는 안되는 짓이다.

저자는 여자임을 강요하는 알렉산드리아의 태도를 문제삼아 평소에 스카웃이 고모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표현하지만

전제로서 에티커스보다 나이가 어리고(그나마 어른 중에는 스카웃과 나이가 비슷하고), 

같은 여성, 특히나 요리를 해주는 가까운 존재이기에 어머니로 착각을 하고 '신적 존재의 생각에 대한 배신감 또는 실망감'으로

애증의 관계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번역가 말대로 시의성이 너무 강하다.

독자의 고양된 지각에 호소하지만 필자는 지식이 없다.

교회 관계 기관에 3년 간 아니 7년간 다닌 경험이 있어도 이는 단순 카톨릭 지식 뿐만 아니라 관련 역사 그리고 당시 시사도 알아야 이해 할 수 있는데

전혀 무리였다. 어림잡거나 큰 글의 흐름으로 이해하는 척을 했지 지금도 제대로 이해 했는지조차도 이해 할 수 없다.

차라리 성경이 이해 하기 쉽다.


만약 <앵죽>을 처음 발간 하지 않고 <파수꾼>을 발간 하였더라면 하퍼 리에 대한 평가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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